고대인의 유해에서 DNA를 부활시키는 방법

최근 DNA 시퀀싱 연구들이 5,300년 전의 설인(雪人) 외치(Otzi)는 물론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까지도 척척 분석해 내자, "고대 인류의 전(全)유전체 코드쯤 분석해 내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연구들은 인간의 뼈, 치아, 머리카락, 또는 기타 (凍土, 얼음, 또는 추운 동굴 속에서 전형적으로 잘 보존되는) 조직으로부터 채취된 매우 순도 높은 DNA 샘플을 이용하여 수행되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인간의 유해는 따뜻한 토양 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아, 보관상태가 썩 좋지 않다. 즉, 유해의 조직 속에서는 온갖 세균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그중에서 인간의 DNA만을 따로 분리하여 분석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지난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인간유전학회(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 연례회의에서, 스탠퍼드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고대인의 DNA 샘플을 정제하는 기발한 방법을 개발했다"고 보고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인간의 치아나 뼈에서 채취된 DNA 샘플은 대부분 세균의 것이다. 그중 인간의 것은 1% 미만에 불과하며, 그나마 짧은 조각으로 분해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DNA를 분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려면 샘플을 시퀀싱기(sequencer)에 넣고 여러 번 돌려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과학자들은 종종 편법을 사용한다. 즉, 그들은 관심 있는 유전자와 얼추 매칭되는 현대인의 DNA를 탐침(probe)으로 이용하여, 샘플을 걸러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현대인과 고대인의 DNA는 비슷하므로, 탐침은 고대인의 DNA에 달라붙게 된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가격이 비싸, 전(全)유전체 중 일부의 염기서열만을 밝혀낼 수 있을 뿐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포스닥 연구원인 메레디스 카펜터를 비롯한 연구진(지도교수: 카를로스 부스타만테)은 이번 회의에서 좀 더 나은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들은 DNA 대신 (DNA보다 훨씬 저렴한) RNA를 탐침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전유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RNA 탐침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우리가 만든 RNA 탐침은 특별한 비드(beads)에 달라붙는 화학그룹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 탐침과 고대인의 DNA 샘플을 혼합한 다음 물로 씻어내면, 인간의 DNA와 섞여 있는 비인간 DNA(nonhuman DNA)를 걸러낼 수 있다. 그런 다음 RNA를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하여 탐침을 제거하면 순수한 고대인의 DNA만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어진 고대인의 DNA를 유전체 시퀀싱기에 넣어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모든 작업이 완료된다"고 부스타만테 교수는 설명했다.

연구진이 500~3,500년 된 고대인 뼈, 치아, 머리카락 십여 개로부터 DNA 샘플을 채취하여 새로운 방법의 성능을 테스트해 본 결과, DNA 혼합물을 단순 반복적으로 시퀀싱한 것에 비해, 2~13배나 많은 인간 DNA 시퀀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향상된 분해능(resolution) 덕분에, 우리는 기존에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예컨대 종전에는 불가리아에서 발견된 2,500년 된 청동기 시대의 치아를 분석하여 유럽인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었지만, 이번 기술을 적용한 결과 인종의 범위를 중부 내지 남부 유럽인으로까지 좁힐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또한 연구진은 페루에서 발견된 500년 된 미라를 분석하여 유럽인의 혈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스페인 연구진의 선행연구 결과를 뒤집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같은 날 발간된 미국 인간유전학회지(The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에도 실렸다. "이번에 개발된 방법은 전유전체 시퀀싱에 적합한 샘플의 수를 늘리는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부스타만테 교수는 연례회의 석상에서 말했다.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제 고대의 개(犬)에게서 채취된 DNA를 분석하여, 개의 길들임(domestication: 가축화) 과정을 밝힐 계획이다. 이번에 개발된 방법은 법의학 분야에서 세균에 오염된 인간 DNA를 다루거나, 미생물 유전학 분야에서 미생물 DNA에 혼입된 인간 DNA를 제거하는 데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스타만테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론은 매우 흥미로워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고 이번 회의에 참석했던 하버드 대학교의 데이비드 라이히 교수(유전학)는 논평했다. 라이히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Science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DNA 샘플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세균에 오염된 부분이 너무 많아 염기서열을 분석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물론 이번에 개발된 방법론이 네안데르탈인의 전유전체 시퀀싱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나는 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네안데르탈인의 전유전체 분석은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헨드릭 포이나 박사도 부스타만테와 유사한 방법을 이용하여, 멸종 동물의 DNA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부스타만테 교수의 방법론에는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예컨대 부스타만테 교수는 이번에 개발된 방법론의 감도(sensitivity)가 어느 정도이며, 근연관계가 있는 현대의 종(種)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부스타만테 교수의 방법론은 연구 가능한 고대 인류 및 동물의 범위를 극적으로 넓힘으로써, 해당 연구분야의 판도를 뒤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DNA 연구를 개인 수준에서 인구집단 수준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훌륭하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record_no=242051&cont_cd=GT

http://news.sciencemag.org/archaeology/2013/10/cleaning-ancient-human-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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